그러나 유미는 남편이 사업을 워낙 잘 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자금을 융통하는 정도로 생각을 했다. 남편의 말이 거짓말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 유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고생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깊었다. 어머니에게 손해가 갈 일이면 절대로 할 입장이 아니었다. 유미는 마음은 착하지만,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상태다. 세상일은 아무리 책을 읽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돈이 얼마나 벌기 어렵고, 남의 돈을 가져다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실패할 확률이 높은지 모르는 것은 역시 경험 부족 때문이다.
"엄마, 강우 씨가 돈이 필요하대요. 한 달만 빌려 주면 안 될까?"
"글쎄, 문제없을까? 사업이란 항상 위험해서 말이야."
"괜찮을 것 같아."
5억 원이란 정말 큰돈이다. 요새는 하도 언론에서 몇 백억 원, 몇 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숫자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돈에 대한 감각이 많이 무뎌 졌다. 그러나 1억 원이란 돈은 만 원짜리가 만 장 있어야 된다. 천 원짜리는 10만 장을 쌓아 놓아야 1억 원이 된다. 그러니까 아파트 한 채에 40억 원이라고 하니 상상이 가는가? 5억 원을 은행에 넣으면 한 달에 150만 원 정도는 나온다. 평생 매달 150만 원씩 이자를 받아 쓰다가 상속까지 해줄 수 있는 자금이다. 그런 자금을 강우가 아주 가볍게 빌려 달라고 한다. 별다른 담보도 없이 자신의 신용 상태를 확실하게 증명하지도 않고, 그냥 말로 빌려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빌려 달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유일하다. 유미와 결혼을 했고, 유미를 데리고 살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유미를 볼모로 잡고 흥정을 하는 것이다. 만일 잘 안 되면 안 살면 그만이라는 배짱이다.
유미 어머니는 무척 고민을 했다. 자신이 모아 놓은 전 재산이다. 강우는 아마 유미를 통해 장모가 얼마의 현금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맞는 5억원을 요구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유미는 친정 어머니의 모든 사정을 강우에게 그때그때 이야기했다. 그것을 강우가 놓칠 리가 없었다. 유미 모녀는 강우의 실력과 인품을 철석같이 믿었다. 결혼하기 전까지의 행동을 보면 안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유미 어머니는 5억원을 빌려 주었다. 유미 어머니 입장에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위가 재력도 튼튼하고 사업을 잘 한다고 해서 결혼을 시켰던 것이고, 하는 행동으로 보아 그런 것 같은데 일시적으로 자금이 딸린다고 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일단 있는 돈을 빌려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위 사업이 부도가 나면 딸에게 곧 바로 영향이 미치니 말이다. 그렇게 끌려들어 가는 것이다.
"어머님!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 돈으로 사업을 잘 해서 어머님을 호강 시켜 드리겠습니다. "
"그래, 정 서방, 열심히 하게. 이제 누가 있겠나? 자네와 유미, 그리고 나밖에 누가 있겠어."
세 사람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남편이 없는 빈자리를 강우가 대신 채워 주는 것 같았다. 남자가 있던 자리에 그 텅 빈 공백을 사위가 대신 채워 주니 마음이 든든했다. 유미도 아버지가 없는 자리를 강우가 대신 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러나 강우의 속마음은 다른 것이었다. 여자들이란 조금만 잘해 주면 이렇게 자기 속을 빼주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우는 처음 넉 달은 이자를 제대로 갚았다. 거기에다 사업이 잘 돌아간다고 하면서 100만 원씩 더 얹어 주었다.
4개월이 지난 다음 사업이 끝나게 되었다.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 처음부터 사업은 엉망이었고, 강우는 아무런 재력도 없었다. 여기 저기서 빚만 잔뜩 얻어다가 겨우 버텨 나가고 있었다. 강우는 유미를 만나 사귀면서 유미 어머니가 식당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고, 그 전에도 유미 아버지가 남겨 놓은 재산이 조금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본격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는 사실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결혼만 하면 처가 집 재산은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얼마나 나쁜 마음인가? 사랑보다는 돈을 더 생각해서 결혼을 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계획적인 사기 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여자 집안의 돈을 챙기고 보자는 심보다.
처갓집 돈을 뜯어먹는 사위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자의 돈을 보고 결혼을 생각한다. 성격이나 다른 조건보다 재력을 보고 달라붙는 것이다. 부잣집 사위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의 자존심을 다 버리고 오직 돈만 바라보고 굽실거리는 것이다. 부잣집이란 돈을 가지고 있고, 권력하고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그 힘을 이용해서 잘 먹고 잘 살아 보자는 심리다. 고시에 붙었다고 해서 부잣집 사위가 되기 위해 사법 연수원에 다니면서 수없이 선을 본다. 결혼 정보 회사에 가입해서 쉴새 없이 선을 본다. 조건을 따진다. 아파트는 사주는가? 재산은 얼마나 되는가? 그것이 사랑일까? 그런 결혼이 어떻게 될 것인가? 겉으로 맞춘 결혼은 시간이 가면서 깨지는 경우가 많다. 의사가 결혼한 후 혼수감이 적다고 신부를 때린 사건도 있었다. 도대체 혼수감이 적다고 싸움을 계속하다니 불쌍한 사람들이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자의 돈과 능력만 보고 결혼했다가 혼이 나는 경우도 많다. 재벌 집에 시집을 갔다가 서로의 환경이 너무 달라 적응하지 못하고 중간에 도중하차하는 사람들도 있다. 능력이 있는 남자에게 시집갔다가 남자가 인격적으로 무시해서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남자가 부잣집에서 편안하게 자라 고생을 몰랐기 때문에 성격이 나약하고 독선적인 경우도 많다. 왕자 병에 걸린 남자를 모시기란 쉽지 않다. 모두 돈 때문에 결혼했다가 맞게 되는 비극이다. 돈이 있고 능력이 있는 남자들은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못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해 놓고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면서 사회에서 계속해서 만나는 멋있고 유능한 여자들과 교제를 하면서 집에 있는 여자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서로 간에 격차가 있는 사람들이 만나 결혼을 했을 때 생겨나는 현상들이다. 유미 모녀는 난리가 났다. 강우가 돈도 많은 집안의 아들이고 본인 역시 유능한 사업가로 알고 외동딸을 시집 보냈는데 완전히 사기꾼을 만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무척 울었다. 여자 두 사람이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는데 나쁜 남자를 만나 돈도 잃고 고통을 받아야 했다.
유미 어머니와 유미는 이럴 때 남편과 아버지 생각이 간절히 났다. 이럴 때 아버지가 살아 있었더라면 이런 문제가 없지 않았을까? 이런 문제가 생겼어도 곧바로 해결하지 않았을까? 강우가 여자들만 살고 있다고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울어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우를 만나 때려 줄 수도 없었다.
"엄마, 아무리 해도 이혼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런 사람하고는 도저히 못살 것 같아."
"그렇지 어떻게 살겠니. 그러나 그렇다고 이혼을 하면 또 어떻게 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자가 이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능력 있고 좋은 사위를 얻었다고 온 동네에 소문을 냈다. 그리고 강우가 결혼하기 전부터 유독 유미와의 관계를 주변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다. 그래서 알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해서 살다가 남자가 돈이 별로 많지 않다는 이유로 이혼을 했다는 소문이 나도 곤란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사기꾼을 만났다고 떠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재혼을 할때 상대방 남자가 초혼인 총각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유미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오직 사람을 한 사람 잘못보고 잘못 만나 인생이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었다.
강우와 유미는 서로 이혼하기로 했다. 아직 결혼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헤어지는데 합의했다. 이런 경우를 사실혼이라고 한다. 법률혼에 대비되는 용어다. 법률혼은 부부가 정식으로 호적상 혼인 신고를 했을 때 성립한다. 그러나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해도 실제로 결혼 생활을 했고, 부부로서 인정되는 관계를 유지했을 때 이를 사실혼이라고 한다. 사실혼도 당사자간의 합의에 의해 종료시킬 수 있다. 만일 일방이 사실혼을 파기하면 그에 따른 위자료를 배상해 주어야 한다.
문제는 강우가 빌려 간 5억 원이었다. 강우는 현재 상태에서는 갚을 능력이 없었다. 말로는 곧 갚는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강우 앞으로 된 재산은 거의 없는 상태다. 유미 어머니 입장에서는 강우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딸의 신세를 망쳐 놓은 강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유미 모녀는 강우를 상대로 고소장을 내기로 했다. 도저히 그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피 같은 돈을 받아 내야 했다. 강우 앞으로는 아무런 재산이 없었기 때문에 민사 소송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사실 돈 거래는 빌려 줄 때 쉬운 것이지 일단 돈이 상대방에게 건네 지면 그 다음에는 돌려받기가 결코 쉽지 않다. 자기 돈을 남에게 넘겨주고 애가 타고 안달이 나는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단지 마음이 약해서 그렇게 되었던 것인데, 정말 불쌍한 일이다. 채무자가 스스로 알아서 제때 이자도 주고 원금을 갚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고 있으면 답답하다. 채권자가 돈을 갚으라고 말을 꺼내기가 무척 어려워 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채무자의 사정이 좋지 않아 이자를 주지 못하고 있는 데 이자를 달라고 하기가 쉽겠는가?
돈을 안 갚는다고 다 사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채무자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남에게서 돈을 빌린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자까지 물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그런 상태에서 채무자는 별로 기분도 좋지 않고 살맛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낫고 돈도 많이 있는 채권자가 이자를 받아먹기 위해 돈을 빌려 주었다가 자꾸 돈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면 채무자의 입장에서는 내심 서운하고 섭섭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채권자의 전화도 받지 않고 기분 나쁜 태도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알게 되면 가까운 사이에서는 돈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나중에 시간이 가면 서로가 원수가 되고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다. 결국 돈 잃고 사람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서 말이 법으로 재판도 하고 강제집행도 하는 것이지 상대방이 갚을 마음이 없거나 갚을 능력이 없으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돈은 오직 돈을 보고 재판을 하는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재판을 하는 것은 공연한 시간과 에너지, 비용의 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명의로는 아무 것도 해 놓지 않는다. 전쟁을 하러 나가는 병사처럼 완전 무장을 하고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이 손해 보지 않기 위하여 모든 재산을 다른 사람 앞으로 돌려놓고 시작을 하는 것이다.
돈을 갚을 사람은 일단 입장이 곤란해 지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상대방이 전화를 꺼 놓고 받지 않으면 전화를 하던 사람은 돌아 버린다. 그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채무자는 대개 차일피일 시간을 끈다. 명확하게 약속을 하지도 않는다. 말로는 쉽게 약속을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결코 지킬 의사가 추호도 없다. 상대방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민사 소송을 하는 것도 말이 쉽지 상대방 주소도 파악해야지, 소장도 작성해야지, 증거 자료도 수집해서 첨부해야지, 인지대 송달료도 계산해서 사전에 납부를 해야지, 그 까다로운 법 절차를 밟아서 재판을 진행하면 언제 재판이 끝날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소장을 송달 받지 않거나 고의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면 그냥 끌려 다니게 된다. 가까스로 재판을 해서 이겨도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판결문은 무용지물이 된다. 소송을 했던 비용과 시간만 아깝게 된다. 이러한 법의 허점과 취약점을 채무자는 최대한 이용한다. 그리고 법을 빠져 나간다. 속으로는 채권자를 비웃고 법을 농락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돈 거래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 남에게 돈을 빌려 달라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뻔뻔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쁜 사람이다.
남이 애써 벌어 가지고 있는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편하게 쓰고 갚는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을 손해 보게 하고, 심지어는 망하게 한다.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다른 사람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거절을 못하고 고민하거나, 돈을 빌려 주고 떼어 먹힌 다음에 울고 불고 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일이다.
유미 모녀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찰서에 고소를 해서 형사사건으로 만드는 방법뿐이었다. 강우는 처음부터 돈을 편취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접근했던 것이고, 결혼이라는 형식을 이용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돈을 5억 원이나 빌려 가서 사업한다고 해 놓고 제대로 사업도 하지 않고 흥청망청 써 버린 것이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속였다. 건강도 무척 나쁜 상태였다. 젊은 사람이 고혈압, 콜레스테롤, 당뇨 등이 심한 상태였다. 성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래서 유미 모녀는 이러한 사정을 모두 적어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강우는 물론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사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위가 어떻게 사기가 되느냐고 강력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유미 모녀의 피나는 노력으로 강우는 구속되었고, 징역 1년 6월의 형을 선고 받았다.
![]() |
사기 결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