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32세, 가명)는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남편이 철저하게 속였고,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망쳐 놓았다. 여자가 남자를 잘못 만나면 인생이 망가진다. 남자가 여자를 잘못 만나면 인생이 비참해 진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그래서 중요하다. 만남은 숙명인 것 같지만 그때그때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만남에 대한 선택을 잘못했을 때 그 후유증은 예상보다 크다. 그게 현실이다. 아주 무서운 현실이다. 유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를 잘 모르고 겉모습에 반하거나 거짓말에 속아 결혼했다가 실패했다. 이른바 결혼 사기다. 사기 결혼이다. 이런 유형의 사기는 혼인 빙자 간음죄와는 다르다. 혼인 빙자 간음죄는 애당초 결혼할 의사가 없으면서 여자의 정조를 빼앗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지만, 결혼 사기는 처음부터 결혼할 의도로 접근하고 실제로 결혼을 하는 경우다.
결혼 사기란 무엇인가?
결혼 사기라 함은 상대방의 돈과 능력, 사회적 지위, 미모 등을 보고 자신에 대한 조건을 거짓말로 속여 돈이 많거나 능력이 있는 것처럼 해서 결혼을 하고 결혼한 다음에는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 결혼을 했고,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조건을 속인 것에 불과해 사기죄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소를 해 보았자 형사 처벌이 되지 않고 무혐의 처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기죄라 함은 상대방에게 어떠한 거짓말을 하고 그러한 거짓말에 속은 피해자로부터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편취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사기 결혼에 있어서는 일단 결혼하면 그 과정에서 결혼하기 위한 거짓말만으로 형사 처벌할 수는 없다. 거짓말을 해서 피해자로부터 금품을 교부 받아야 사기죄가 되는 것이다. 다만, 결혼할 의사 없이 돈만 뜯어내는 경우에는 결혼 사기로 처벌된다.
사기 결혼이라는 것은 결혼을 하기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속임수가 있었다는 것인데, 일단 그 속임수가 중요하면 결혼 취소 사유가 된다. 그러나 사기죄는 속임수로 인해 재산을 편취해야 하는데, 단지 결혼을 하고 혼인 신고를 했지만 구체적으로 재산을 편취한 사실이 없으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결혼을 한 사람을 상대방 여자의 정조를 편취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성 매매에 있어서는 화대를 줄 의사나 능력이 없이 성 매매를 하면 돈을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간음을 하였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
결혼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속인 사실이 증명되면 혼인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신착란증환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을 하거나, 성 불구인데도 그러한 사실을 감추고 결혼하는 경우에는 혼인 신고를 한 후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배우자는 혼인 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혼인을 취소할 정도로 중요한 사실을 속인 것이 아닌 경우에는 혼인 취소 사유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다른 사유와 복합하여 이혼 사유에 해당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사안이 중대한 경우에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재산 상태에 대한 거짓말이나. 학력, 경력 등에 대한 허위 과장 정도 가지고는 이혼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결혼하면서 집안에 돈이 많지 않은데 부자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좋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정력이 세지 않은데 정력이 변강쇠 정도로 세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그 정도로 혼인 취소 사유가 되거나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혼인 계약은 일반적인 재산 거래 계약과는 다른 신분 계약이므로 중대한 경우가 아니면 계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속아서 결혼한 남자와 여자는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불행하게 된다. 최근에 이혼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와 같이 결혼하기 전부터 서로가 솔직하지 않고 상대방의 재산이나 능력을 이용하려는 정략 결혼이 많기 때문에 결혼 후에 이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유미는 그 동안 좋은 신랑감도 많이 있었지만, 이것 것 따지다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년 전에 만난 강우(35세, 가명)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러 가지 조건도 좋았지만, 모든 행동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 세상을 바라보는 눈, 시각 등이 어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사기꾼들은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상대방에게서 나중에 크게 뜯어낼 생각을 하고 일정한 금액을 투자한다. 과감한 투자다. 예를 들어 괜찮은 여자를 사로잡기 위해 집중적으로 2개월에 걸쳐 2천만 원 정도를 투자한다는 식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재벌 2세인 것으로 잘못 알고 마음을 주는 것이다. 사기꾼들은 이처럼 고도의 전략을 세워 투자를 하는 것이다.
사기를 당해서 결혼하는 이유
많은 남자들이 결혼을 매우 중요한 비지니스로 생각하고 좋은 여자를 만나 꼬시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한다. 현대 사회에서의 성공 전략을 애정 문제에도 발휘하는 것이다. 서점에 가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한 가이드북도 많지만, 애정성공법에 관한 분석 책자도 많이 눈에 띈다. 머리를 써서 노력을 하면 자신보다 훨씬 좋은 배우자를 잡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반면에 머리를 쓰지 않고 노력을 게을리하면 얻었던 배우자나 이성 친구도 남에게 빼앗기거나 애정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유미는 그래서 강우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다. 만난 지 한 달이 지나서부터는 혹시 강우가 마음이 변할까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한 것도 유미였다. 유미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사랑을 먼저 고백했다.
"사랑해요. 정말로 아주 사랑해요."
"나도 유미가 정말 좋아요. 우리 절대로 변하지 말아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려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유미는 혼자 있는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좋아 사랑을 하게 되면 주변에서 말려야 소용이 없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 지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현실적인 많은 핸디캡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덮어 지게 된다. 객관적으로 어떻게 저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까 하지만, 그것은 속사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편하게 대해 주고 인간적인 면이 있는 이성에게 빠지면 그렇지 않은 객관적인 조건들은 대부분 가볍게 무시되고 만다. 돈을 따지면 치사한 사람이 되고, 너무 똑똑하면 불편해서 못살겠다는 식으로 꼬리를 달고 나온다. 그래서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 상대방을 만나 사랑에 빠져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대개의 경우는 갈 때까지 가다가 헤어지거나 끝까지 살면서 자신의 인생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도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했노라고 믿고 있고 그 믿음이 죽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중간에 그 믿음이 깨지거나 흔들리면 그때는 아주 외롭고 비참하게 된다. 후회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이 자신이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무게가 될 뿐이다.
세상에는 그런 비극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전혀 서로가 환경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 결혼하겠다고 하면 부모들이 반대한다. 부모의 반대는 오히려 사랑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불태우고 끝내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부모와 사이가 나빠지고 서로 보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는 처녀가 유부남을 사랑해서 간통죄로 구속되기도 한다. 나이 차이가 20살이나 나도 사랑은 사랑이다. 주변에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판을 해도 사랑에 빠진 당사자들은 그것을 신앙에 대한 박해로 간주하고, 더욱 사랑의 신앙에 빠진다. 순교까지 각오를 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사랑의 불합리성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모든 가치를 사랑 앞에 던져 버리는 무모함을 보이는 것이다. 사랑의 전쟁은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함을 보이기도 하고, 세상의 눈을 가려 버리는 어리석음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 사랑의 전쟁에서 아무 이름도 없이 죽어 가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역사가 그런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사랑의 전쟁터에는 이름 없는 묘비명들이 오늘도 진흙탕 속에 뒹굴고 있다.
유미 어머니는 강우를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두 사람의 교제와 결혼에 대해 승낙했다. 강우가 적극적으로 나섰으므로 결혼도 빨리 이루어졌다.
결혼식도 올리고 두 사람은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유미 어머니는 남편이 죽은 다음 혼자 살면서 식당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외동딸인 유미를 위해 저축을 하고 있었다. 식당은 점점 손님이 많아 돈이 어느 정도 모아 지고 있었다. 결혼 생활을 평온하게 하다가 갑자기 남편이 죽게 되면 여자는 공황 상태가 된다. 남편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가 혼자가 되면 심리적으로도 불안해 지고,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싸워야 한다. 사별은 이혼과 또 다르다. 이혼은 미워하는 마음으로 고독을 억누른다. 이혼은 무관심으로 다른 감정들을 제압하게 된다. 그러나 사별은 오직 애틋한 그리움만 남아 다른 모든 감정들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한다. 배우자와 사별한 사람은 평생 그런 고통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남들은 그런 고통을 잘 모른다.
강우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다. 사무실도 제대로 꾸며 놓고 직원들도 5명이나 되었다. 차도 BMW였다. 외국에도 자주 다니고 있었다. 한 달에 3천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다고 했다. 유미에게 앞으로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유미를 평생 호강 시켜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양복이며 구두며 지갑도 모두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녔다. 고급 술집이 단골이었고, 주말이면 골프장에 가서 살았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정신 세계는 어떨까? 세속적으로 빠지면 정신은 공허해 진다. 말초 신경만을 자극해 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피폐해 지고, 육감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면서도 쉽게 권태를 느끼고 회의에 빠진다. 자신이 왜 사는지 전혀 생각할 겨를 없이 당장 이익이 되면 좋고, 짜릿한 자극을 주면 만족한다. 그런 것이 되풀이 되지 않으면 삶의 의욕을 쉽게 상실하고 만다. 유미와 어머니는 딸에게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그들은 3개월 동안 꿈속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 다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바이어가 갑자기 계약을 취소해서 자금 사정이 어려워 졌어. 곧 부도가 날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어머님께 말씀 드려 자금 좀 빌리면 안 될까?"
"어떻게 하지요? 얼마가 필요한데요?"
"우선 5억 원만 있으면 충분해, 한 달만 쓰면 될 것 같아. 이자는 한 달에 600만 원을 드리면 되지 않을까?"
유미는 세상 일을 잘 몰랐다. 사업이 잘 돌아가다가 그럴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일시 돈을 빌려 주었다가 이자도 받고 한 달 뒤에 돌려받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시집간 딸이 친정 어머니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돈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들이 사업을 하다가 자금 사정이 어려워 아버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선뜻 돈을 내어 줄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피가 통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잘 되면 아버지가 잘 되는 것이고, 아버지가 잘 되면 아들에게 이익이 된다. 장인 장모와 사위 사이는 다르다. 피가 통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속마음을 알 수 없다. 정확한 마음이나 그 동안 살아온 과정을 잘 모르고 성격도 제대로 파악이 안된 상태이므로 우선 충분한 믿음이 없다. 사업상의 실력도 잘 모른다. 그리고 언제 어떠한 마음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돈을 빌려 주어 사업을 도와 주었더니 나중에 돈을 많이 벌자 다른 여자를 얻어 바람을 피는 사위들도 한 두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딸에게는 얼마든지 돈을 주고 옷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싶지만 사위에게 필요 이상의 사업 자금을 대주고 싶은 마음은 선뜻 생겨나지 않는다. 그게 사회 경험상 생겨나는 인간 심리다. 보편적인 현상이다.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나가 제대로 일은 하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살찐 송아지를 잡도록 하고 좋은 옷을 입히는 아버지는 있어도, 자기 재산을 가져다가 탕진하고 돌아온 사위를 위해 잔치를 베푸는 장인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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