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5, 2014
목욕탕에서 만난 여자 선생님
의찬이는 목욕을 좋아한다.
그래서 종종 외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자유로 아쿠아랜드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온다.
하지만 저 녀석도 조만간 아빠를 따라 남탕으로 가게 되겠지...
요즘은 2~3살만 되면 목욕탕에서 혼욕을 금한다고 한다.
난 국민학교 1학년 때까지 여탕에 다녔거든.
왜 그랬냐구?
어린 게 벌써부터 그런 쪽에 관심이 있어서?
아님, 아버지 보다도 엄마를 더 좋아해서?
....
사실 여기엔 한 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연이 있었어.
나도 어쩔 수 없는 특별한 사정 말이야.
그럼 잘 들어봐.
아마 나랑 비슷한 경험해 본 사람들 제법 있을 걸?
때는 박정희 대통령의 영도 하에 한창 경제개발에 힘쓰던 1972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어쩌면 당시 어려운 경제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몰라.
우리 동네엔 목욕탕이 하나 있었어.
지금은 집 근처에 목욕탕이 세 개나 있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연지탕 하나였어. 이전에 새마을금고 있던 곳.
대체로 나 또래의 아이들은 일년에 3-4 차례 공동 목욕탕에 가곤 했지.
목욕도 자주 안 하고 살았느냐고 너무 욕하지마.
목욕탕에 안 가더라도 부엌에서 물 데워 할 건 다 했으니까.
주로 집에서 목욕을 하지만 꼭 목욕탕에 가야만 하는 날도 있어.
여기 보기에는 몇 개 밖에 없지만...
내가 꼽으면 몇 개 더 나올거야.
- 명절(설날, 추석, 생일)
- 제사가 있을 때
- 생일, 졸업, 입학 등 주요 의식이 있으면
- 그리고.... 에... 그러니까... 우리 엄마 빨래거리가 많아졌을 때
공동 목욕탕에 가면 그야말로 물을 물쓰듯 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몇 시간씩 따뜻한 곳에서 때를 벗기거나 빨래를 할 거면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목욕탕이 훨씬 저렴하다는 거지.
쉬운 말로 하면 목욕탕은 꼭 필요할 때만 간다 이 말씀이야.
목욕탕이 좋긴 하지만 공동 목욕탕에 가려면 돈을 내야 해.
뭐 자기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물 값에다가 연료비를
충당하려면 돈을 받아야 할 거 아냐?
그것도 극장처럼 한 번 보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한 번 입장하면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나가는 곳인데....
적어도 땔감(당시에는 폐목을 때서 물을 데웠음. 그래서 목욕탕 하나
안 하나 보려면 '목욕 중', '금일휴업' 간판 대신 멀리서
굴뚝에 연기 나나 안 나나 보면 됨) 값은 벌어야 할 거 아냐.
물론 우리 같은 서민들은 그 돈 내기가 아까웠지.
그래서 이왕 태우는 연탄, 그 위에 물 데워 목욕하고 말지.
내가 여탕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사연도 바로 이런 면이 크게 작용했어.
그러니 절대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
난 국민학교 들어갈 때까지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 지도 몰랐어.
나중엔 알게 되었지.
여자는 밑에 달린 게 없고,
남자는 밑에 달린 게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남자는 밑에 미음 받침이 달려있고 여자는 받침이 안 달렸어)
그런데 가끔 가는 목욕탕이라도 이왕 가는 거 남탕을 갈 것이지
왜 여탕을 갔냐고?
거기엔 또 말 못할 사연이 있지.
남탕엘 가려면 아버지와 함께 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목욕을 가볍게
하는 스타일이라 그냥 수건에 비누 묻혀서 "닦고" 오는 게 다야.
그리고 직장 다니기에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도 없고.
그런데 엄마랑 가면 정말로 알뜰하게 때(피부의 표피)를 "벗겨" 오거든.
그러니 자주 가지 않는 목욕 한 번 가면 확실하게 벗겨야 한다고
엄마가 데리고 가는 거지.
또 있어. 우리 아버지는 신사야. 그래서 거짓말을 못 해.
내 키가 어릴 때부터 좀 컸거든.
6살 되고서부턴 목욕탕 주인이 서서히 눈빛을 달리 하며 요금을 내라는데...
아버진 순순히 내지만, 우리 엄만 절대로 순순히 안 내.
남탕에서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면 "여섯살입니다" 이지만
여탕의 창구에서 물어보면 어김없이 "다떳딸"이라고 대답해야 했으니깐.
말 마. 게다가 엄마가 창구 앞에서 키 낮추라고 내 머리 찍어누르는
바람에 엄청 스트레스 받았다구.
아뭏든 그래서 목욕은 엄마를 따라 다녔어.
적어도 그 날 그 사건이 터지기까지는 말이야.
그 날도 아스라한 수증기 속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울 엄마에게
산 채로 가죽을 벗기우고 있었지.
그리고 잠시 후 풀려나서 조그만 대야에 물을 받아 나 혼자
몸에 물을 뿌리고 문지르고 있을 때....
침침한 목욕탕 불빛 아래에서 한 여인의 얼굴을 보았지.
그 얼굴은 내가 잘 아는 얼굴이랑 너무나 닮았어.
아니 똑 같았어.
그 여인은 나에게 항상 자기를 보면 길거리에서나 학교에서나
언제 어디서나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하라고 가르쳤었지.
맞아. 난 바로 지금이 그 언제 어디서나의 한 경우라는 걸
깨닫고 반갑게 인사를 했어.
"샘, 안녕"
"(허거덕~ 헉헉~ 에구머니~)"
그 때 내가 왜 담임 신OO 선생님께 반갑게 달려가 안기지 않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생각해 봐.
내가 부산대 앞에서 핫도그 먹고 있다가 아는 학생 만나도 부끄러운데
서로의 성별이 다른 사제지간에 출생 당시의 그 모습으로
서로를 완전히 개방한 상태에서 각자의 감추어진 부분을 꺼내 씻고
있다가 만났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했겠어.
반갑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선생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엔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모르는 25살 처녀만 있었어.
목욕탕 안이 무척 더웠나봐.
선생님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발갛게 익어가는 걸 보았지.
학교에서와는 달리 선생님은 날 외면했어.
(먼저 아는 척 인사하라고 하시구선...)
물 푸는 조그만 대야로 하체를 가린 채 등을 돌리는 선생님.
그 때 선생님의 등이 참 희고 넓다는 생각을 했어.
결국 그 날 선생님의 앞뒤를 다 보고 말았어. 소중이까지..
그리고, 그 일이 있은 지 일주일인가 지나서...
왜 그 뭐냐...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흔히들 질문하는 거 있잖아.
"자아~ 아침에 세수 안 하고 온 사람 손 들어봐요."
"자, 자기 전에 양치질 안 하는 사람 손 들어봐요."
그리고 어린 학생들은 어김없이 순진하게 그대로 손을 들지.
그 날의 질문은 이거였어.
"자아~ 목욕갈 때 엄마랑 같이 가는 사람 손 들어봐요."
난 그 날 이미 엄마랑 같이 여탕에 온 걸 선생님이 아시니
어쩔 수 없이 당당하게 손을 번쩍 들었고,
나의 용기있는 결단(?)에 주저하던 학생들이 하나 둘...
계속 손을 들더군.
뭐, 그러고 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잖아?
선생님도 할 말을 잊은 듯 머쓱해 하시다가 한 말씀 하셨어.
"앞으론 남자는 아버지와 함께 남탕에 가세요."
그래, 그걸로 끝이었어.
선생님이 나랑 자주 눈을 안 맞춰주신 건 좀 섭섭했지만
별 일 없었어.
그리고 선생님과 나는 다른 학생들이 모르는 그런 비밀을
공유하고 함께 6년간을 보냈어.
지금쯤 그 선생님은 어디에 있을까?
가끔 난 우리 의찬이 고추를 들여다보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지.
"예찬아, 넌 언제 아빠 등 밀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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